비영리조직용 무료 회계프로그램 개발과 보급

비영리조직을 위한 무료 회계관리 프로그램 "처음회계", 엑셀만 있으면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는 처음엑셀회계2.4를 이용해보세요.

공지 처음회계가 만들어진 이야기

인동준(지각생)
2022-05-20
조회수 2299
비영리조직용 회계 프로그램 찾기

비영리조직의 투명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적절한 회계관리 도구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20년 동안 끊이지 않고 제기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상용 프로그램은 비영리조직의 실제 필요보다 많은 기능이 있어 과중한 비용 부담, 학습과 이용의 어려움 등이 있어 왔어요. 비영리조직의 필요에 맞게 출발한 회계관리프로그램도 성장하고 나면 처음 뜻과 달리 비대해지고 독점화되어 단체의 입장에서는 버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계담당자들과 공익회계사들, 중간지원조직들이 해법을 논의하는 간담회가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비영리IT지원센터가 2013년에 만들어지고 지각생이 상근 활동을 시작한 후 이런 오랜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새로운 회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 힘든 일이고 당시 시장 상황도 유리한 편이 아니어서, 비영리조직에 소개할 만한 적정한 솔루션을 먼저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발견하게 된 것이 김준영님의 <노동조합 회계관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의 수입지출 구조는 다른 단체들에 비해서도 심플한 편인데요, 부천 지역에서 활동하고 계시던 노동운동가 김준영님이 엑셀 매크로를 활용해서 지역 노동운동가들이 단축키 몇 개만 외우면 사용할 수 있게 만드셨어요.


(그림: 김준영님의 노동조합 회계관리 4.53 모습)

<노동조합 회계관리>는 예산서와 원장, 고정비, 품의서 시트에 내용을 입력한 후 특정한 단축키를 누르면, 품의서/지출결의서와 결산서 등이 자동으로 생성됩니다. 단축키 한 번 누르면 잘 짜여진 매크로(macro)가 결산서를 생성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서 아날로그 감성도 묻어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나중에 결산서 생성되는 모습을 영상으로 올릴까 합니다) 아주 심플하고 심리적으로 가깝게 다가오는 것이 최대 장점이고요, 아쉬운 점은 단축키를 외워야 한다는 점, 시트들을 직접 건드릴 수 있다보니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점, 노동조합 회계에만 맞춰져 있어 조금 더 복잡한 구조의 단체에서는 그대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처음엑셀회계의 처음

이걸 발전시켜 비영리IT지원센터에 있을 때 처음엑셀회계 첫 버전을 만들었어요 (2014). 단축키를 외우지 않아도 되도록 버튼을 만들고, 첫 페이지 외에 다른 시트를 숨기고 입력 폼을 불러와 내용을 입력하고, 한 작업을 마치면 다시 첫페이지로 돌아오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누군가 기존에 해 오던 자구 노력을 이어가 조금만 더 편의를 개선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게 하는 것이 컨셉이었어요. 처음부터 큰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하다 중도에 힘이 빠지는 일이 없게 하고, 꾸준히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공공재 성격의 프로그램이 계속 성장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힘을 빼고 시작했기에 과정은 순조로웠습니다. 2014년 8월 정도에 공개되는 걸 목표로 다른 일 중에도 짬짬이 시간을 내어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공개 목표로 한 날이 가까워졌을 때, 서울시NPO지원센터와 비영리IT지원센터가 공익회계사들을 초청해 이 프로그램을 시연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비영리조직 입장에서는 이 정도만 되어도 도움이 되고 앞으로가 기대되는 상황이었지만 전문가들의 기준에서는 많이 미흡한 것이 당연해서 반응은 썩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일단 공개하고 계속 피드백을 받으며 천천히 발전시켜나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개발 과정에서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PM역할을 하던 활동가가 공개가 임박한 시점에서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해달라는 요구를 한 것입니다. 저는 이런식으로 하면 위험한 상황이 된다고 했지만 결국 타협해서 공개 시점을 늦추고 기능을 추가하기로 했는데요, 확실히 그 몇 가지 기능이 추가되면 좋긴 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아주 단순하게 한 걸음만 나가려던 것을 몇 걸음 더 나아가게 됐습니다.

(그림: 2015년 초에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된 1.6 버전 모습입니다.)

그렇게 2014년말에 1.0을 공개했습니다. 며칠 사이에 등록하고 받아가신 분이 2000여명이 넘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알맞은 프로그램이 드디어 나왔다고 좋아해주시는 분이 많아서 제작자로서 보람이 컸지요. 그런데 바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촉박한 일정에 무리하게 기능을 구현하다보니 충분한 사용자 테스트가 안되어 버그가 많았던 것입니다. 여러 컴퓨터 환경을 다 고려하지도 못했고, 다양한 오피스 버전에 대해 충분히 반복 테스트도 못했는데 프로그램 로직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보니 오류 제보가 끊임 없이 날라왔습니다. 저는 다른 일은 거의 못하고 이 일에만 몇 달을 더 매달려야 했지요. 

2015년에도 프로그램을 안정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는데요. 결국 충분히 안심하며 쓸 수 있도록 안정화 시키는데 실패했다고 판단되어 처음엑셀회계1.6을 끝으로 더 이상의 업데이트는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많은 분들께 희망고문만 시켜드린 뼈 아픈 실패담으로 남았습니다. 


처음엑셀회계2

2015년에 가을에 두 명의 시니어 활동가가 IT소비협동조합을 만드는 구상을 제기하셔서 창업 우수 아이템으로 선정되셨습니다. 공동체IT의 초대 이사장인 이광우 조합원과 장인기 조합원인데요. 상근 활동을 그만두고 비영리IT지원센터 설립 전에 함께 구상했던 "비영리조직의 IT소비자협동조합", "IT자원활동가들의 협회" 두 방향을 고민하고 있던 저와, 제가 나온 후 외롭게 비영리조직 현장지원활동을 하고 있던 이정한 조합원이 의기투합을 했습니다. 그래서 설립추진위원회를 만들고 2016년 5월 발기인대회를 거쳐 11월에 창립한 것이 지금의 공동체IT사회적협동조합입니다.

이광우 조합원은 개발자이면서 영리 기업의 회계에 대한 이해가 있는 분입니다. 설립을 준비하면서 처음엑셀회계1.6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내부를 분석하기 시작했고요, 설립 과정에 참여하신 여러 개발자들의 도움도 얻어 처음엑셀회계1의 코드를 처음부터 완전히 재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시간 제한이나 무리한 요구를 드리지 않고 완전히 맡겨드렸고, 그래서 1버전과는 확연히 다른 성능과 안정성, 만족감을 주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비공식 경로로는 선 공개를 해서 사용자의 피드백을 받아 계속 발전시켜 나갔고요, 2018년 8월에 관악구 사회적경제조직 활동가에게 교육을 하면서 공식적으로 처음엑셀회계2.0을 선보이게 됐습니다. 

처음엑셀회계2는 1버전에 비해 비영리조직 활동가의 필요에 맞게 기능이 늘어났으면서도 효율적인 코드를 써서 성능과 안정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프로젝트와 사업 관리 기능을 이용하면 표준이 없어서 저마다 다르게 운영되는 비영리조직의 회계 구조를 상당히 커버할 수 있었고, 보조금 사업에 대한 관리도 가능했습니다. 통장과 카드 등록, 은행 거래내역 파일 불러 오기, 회비 납부 관리 기능 등이 있어서 비영리조직의 회계담당자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현재 (2.4) 모습

처음엑셀회계1이 사실상 망했다보니 ㅠㅠ 2.0을 공개할 때는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1 때와 달리 2.0부터는 어디 등록하지 않아도 누구나 가져갈 수 있는 공공 도메인으로 올려뒀어요. 1.0의 문제가 해결되고 전보다 여러면에서 좋아진 것은 확실하지만 뭐랄까 즐기는자의 마음으로 임했다고 할까요. 꾸준히 이용 문의가 들어오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그래도 쓰시는 분이 좀 되시나보네' 정도로 한동안은 가볍게 생각했는데요, 비영리조직을 지원하는 기관들의 교육 요청이 전국 각지에서 점차 늘어났습니다. 이광우 조합원과 함께 열심히 다니며 소개를 했고 좋은 피드백을 받아 신이 났습니다. 지금 정확히 몇 분이나 이 프로그램을 쓰시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국 각지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마을기업들이 공공기관에서 이 프로그램을 소개받는다는 얘기를 듣고 생각보다 꽤 많이 쓰고 계시나보다하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처음엑셀회계 3?

처음엑셀회계2를 이용하시는 분이 많다보니 기능 추가 요청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2.4까지 버전업이 되었는데요 어느 순간부터는 요청받은 내용을 다 반영하지는 않고 있어요. 처음 보다 기능이 많아지면서 조금씩이지만 무거워지고 있고, '핵심 기능만 있어서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범위를 점차 넘어가고 있지 않나 싶어서 입니다. 저마다 다른 컴퓨팅 환경에서 사용하시다 보니 생기는 변수도 다양하고 지원이 끊기는 소프트웨어 등 외부 영향도 점점 커집니다. 그래서 아쉽지만 새로운 기능을 만들어 전해드리고픈 마음을 스스로 억눌러 가며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고 있어요

한 가지는 처음엑셀회계를 웹 브라우저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 만들고 그 동안 요청 받은 내용을 조금만 더 구현하는 겁니다. 이 경우 모든 이용자에게 같은 코드를 적용할 수 있어서 기술지원이 조금 더 용이합니다. 또 다른 방안은 엑셀 기반이 아닌 독립적으로 실행되는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것인데요 최근에 공동체IT와 인연을 맺은 개발자께서 관련 기술을 만들어 오셔서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엑셀 기반으로 가면서 기능을 추가하는 방법도 열려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던 처음엑셀회계2는 지금처럼 누구나 쓸 수 있는 공개 도구로서 계속 남기고 유지보수를 한다는 것이 공동체IT 사무국의 기본 방향입니다. 더 다양한 비영리조직의 필요에 맞게 발전해 지속가능한 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거대하고 무거운 방식이 아닌 가볍고 유연한 방식으로 계속 개발이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 개발 참여와 이용, 보급 활동에 참여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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