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사회 변화를 위한 시스템 사고

인동준(지각생)
2025-03-13
조회수 80


📌 내용이 길어서 읽기에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시스템 사고가 생소한 분들이 많으실거라 압축을 하지 않고 썼습니다. 이 글을 꼭 다 읽고 동의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은 아니므로 편하게 훑어봐주셔도 좋겠습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 이 글은 총회준비위원들 한 분 한 분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는 제 사견임을 말씀드립니다.
📌 시민사회 전반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 공동체IT 운영하면서 올해 총회에 말씀드리고픈 고민, 저 혼자 시스템 지도를 그려본 것,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에 IT기술 지원을 시작한 지 저 개인적으로는 21년째가 되었습니다. 공동체IT에 관련된 모든 분들이 다양한 경로로 사회공헌을 해오셨을텐데요, 아마 공통적으로 느끼시는 점이 있을 것입니다. 일부의 잘 알려진 단체, 소수의 명망가가 시민사회에 대한 여러 오해와 편견을 만들기도 합니다만, 거의 모든 단체들에서 좋은 뜻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헌신적으로 쏟아붓는 노력에 비해 그 개인과 조직의 성과, 사회적 목적 달성도를 보면 참 아쉬워 보일 때가 많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부족한 성과가 안타까운 수많은 사람들이 좋은 의도로 여러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일부는 그런 조언을 받아들여 혁신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부분적인 변화의 흐름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있고, 내부 갈등을 비롯한 여러 문제로 전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의도로, 정말 다양한 역량을 투입하며 오랜 시간 동안 사회 변화를 위해 활동하는데, 왜 대부분 아쉬운 결과, 때로는 전보다 더 악화된 상황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걸까요? 사회라는 복잡한 시스템 그 자체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바람이 담긴 행동 패턴들이 끊임 없이 섞여서 만들어지는 사회를 있는 그대로 전체적으로,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워크를 만들거나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단순화해서 이해하고 적응해갑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인식의 틀들은 때때로 핵심을 관통하고 세상의 이치를 알기 쉽게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질 때도 있겠습니다만 결국에는 그런 프레임워크가 우리를 그 안에 가두게 되어 점점 현실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좋은 외부 흐름을 타고 있어 당장 큰 위기가 아닌 것 같을 때에는 어쩌면 그런 단순한 프레임워크를 사용한 전통적 사고로도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하며 현상을 유지해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흐름이 바뀌어 위기가 다가오면 서로가 가진 프레임워크가 라인으로, 세력으로, 분파로 굳어지며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고 힘으로 겨루는 경향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나/우리에게 권한이 있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권한을 획득해도 막상 조직과 사회는 생각만큼 좋은 방향으로 충분히 변화하지 않는 경우가 많죠. 그러면 다시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며 싸움이 이어집니다. 그러다보면 권한을 갖는 것이 수단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하죠.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지도 모르는 장기적인 해결책보다는 당장 눈에 띄는 효과를 보이는 빠른 해결책, 임시방편만이 난무하기도 합니다. 그런 임시방편들은 장기적 해결책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소진시켜 악순환을 심화시킵니다. 원래 오랜 역사를 통해 고안해 낸 사회시스템은 선순환을 이룰 수 있도록 설계들이 됩니다만, 현실에서는 악순환이 더 많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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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합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공익 활동을 수행하는 복잡한 시스템입니다. 디지털격차를 줄여 시민사회와 사회적약자가 IT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고, 사회공헌에 관심 있는 IT인이 지속가능한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협력 플랫폼이죠. 가진 것 없이 오직 몸과 마음만으로 시작한 지 벌써 9년째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 많은 조합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를 하며 지금까지 이어 올 수 있었죠. 일단 기반부터 다지기 위해 영리와 비영리를 가리지 않고 사업을 해왔는데요, 느리지만 착실하게 성장을 하고 있다고 여겨질 때 코로나19라는 큰 외부 충격이 있었습니다. 코로나19를 극복했나 싶었는데 뒤이은 정치사회적 혼란으로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 전반이 약화되며 계속적인 여파를 겪고 있습니다. 이렇게 위기가 장기화되다 보니, 과연 이게 외부적 요인만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사실 우리도 단기적 해법, 임시방편을 써가며 현실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해 온 것은 아닐까하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창립부터 지금까지 사무국에서 일하면서 저는 많은 분들께 위로와 지지를 받는 입장입니다만, 가장 고생과 희생을 많이 해왔다고 하는 저 또한 어떤 문제들을 지속시켜 온 요인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2025년 정기총회를 준비하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이 소위 바닥을 찍은 상태이고 이제 올라갈 일만 남은 것일까? 조합원들에게 그저 희망을 안겨주며 총회라는 한 행사를 무사히 치르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많은 분들이 그동안 공동체IT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의견을 제시해주셨습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제게 개인적으로 말씀해주신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러 관점을 종합해 전체를 함께 시스템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문제를 세분화해 부분부터 해결해 가는 방식을 대부분 제시해주셨는데요, 그 자체로 정말 좋은 의견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조합 사무국에서 오래 일하고 영리와 비영리 부문, 조직 활동과 사업 수행을 모두 조화롭게 운영해야 하는 제 입장에서는 대개 '다른 부문들을 포기하고 한 가지만 하라'고 하는 말씀들이 너무 아쉬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 판단은 제쳐두고라도 그런 중대한 결정을 저 혼자 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한데, 주장들이 공론화되어 함께 논의되지 못하고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기간 지속된 위기 상황에서 외부 요인 탓만 하는 것은 그만두고, 보다 깊은 구조적인 문제를 많은 분들과 함께 바라보는 '시스템 사고'의 시간들을 가져가 보고 싶습니다. 2025년 정기총회에서 이런 뜻을 밝히고 4~6월에 연속 워크숍을 가져보자는 제안을 할 참이었는데요, 총회준비위원회에서 많은 분들이 모이는 정기총회부터 시작해보기로 결정해주셨습니다. 저로서는 무척 반가운 결정이었습니다. 총회를 그저 법령상 의무로 형식적으로 치르는 것이 아니라, 길게 준비한 자료를 설명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고 쫓기듯 의결을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참석한 분들의 뜻을 실질적으로 모아 보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아래에 제가 총회준비위원회에서 시스템 사고의 필요성을 제기하기 위해 제출했던 '공동체IT 시스템 지도'의 예를 올립니다. 시스템 지도를 만드는 작업은 원래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만, 아직 생소하신 분들이 많을 거라서 저 스스로도 경험이 불충분하지만 제 관점만으로 선순환과 악순환 구도를 지도로 만들어봤습니다. 정기총회에서는 시스템 사고에 대한 사전 이해가 있으신 조합원께서 워크숍을 리드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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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IT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서 공유자원을 활용해 조합원들의 뜻을 모으고 역량을 강화하는 조직활동들을 수행합니다(A1). 이 활동의 성과로 늘어난 역량은 조합원들이 다시 공유할 수 있는 자원이 됩니다. 예를 들면 조합원이 다른 조합원을 가입시키거나 후원을 조직할 수 있고, 나의 기술 역량과 사업 노하우를 공유해 축적합니다(A2). 이렇게 공유자원과 조직활동의 선순환 사이클이 하나 만들어집니다(R1).

공유자원(브랜드 가치, 축적된 역량, 관계망을 통한 사업 등)으로 여러 가지 사업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B1). 이렇게 수행한 사업의 성과로 매출 이익이 생기고, 기술과 경험이 늘어납니다. 실패하더라도 접근 과정에서 좋은 평판을 얻는다면 공유자원을 늘릴 수도 있습니다(B2). 이렇게 공유자원과 사업수행의 선순환 사이클이 또 하나 만들어집니다. 

조직활동이 왕성할 경우 역량 강화를 위해 시작한 시범 프로젝트가 바로 사업화가 되는 등 어쩌면 공유자원을 거치는 과정이 없어보일 정도로 바로 사업수행으로 이어지기도 하고(C), 조합에 재정적, 물리적 여유가 없어도 사업수행 과정에서 활용하는 외부 자원을 이용해 조직활동을 수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D). 이렇게 모든 것이 잘 돌아가면 여러 가지 선순환 사이클이 만들어집니다. 


 조직활동과 공유자원, 사업 수행의 선순환 사이클을 묘사하는 예를 들어보았습니다. 이 그림은 조직활동이 생산자조합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이 그림은 조직활동이 소비자조합원인 시민사회와 사회적약자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실제 이 변화는 즉시 이뤄지기보다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으므로 정확한 다이어그램은 아니지만 예를 드는 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조직활동이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쳐 사업을 수행하고 공유자원을 확충하는 선순환 사이클을 최초의 그림에서 아래 그림으로 확장했습니다. 

이렇게 설계한대로만 잘 돌아가면 좋겠지만, 현실은 이상과 다르죠. 실제로는 여러 흐름에서 악순환으로 전환되어 나타납니다. 

이 그림은 우리처럼 가진 것 없이 시작하고 지역, 종교 등 전통적 강한 지지 기반이 없어서 단기 운영비까지 모두 사업으로 벌어서 충당해야 하는 조직의 경우, 조직활동에 소홀해지며 어떤 부정적 흐름으로 순환되는지를 묘사해봤습니다. 공동체IT가 서비스하는 소비자는 일시적 구매자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역량이 강화되고, IT로 보다 많은 것을 하게 되어 잠재된 수요가 개발되고, 그런 조직의 안팎에서 기술 부문 투자가 일어나 공동체IT가 할 수 있는 사업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기대합니다. 일단 컴퓨터 문제를 해결하면 홈페이지 문제도 해결하고, 홍보 마케팅 문제를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해결하면 아카이빙, 데이터 기반 전략적 사고 등으로 이어지는 것이 예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소비자조합원의 성장을 오랫 동안 지원하는 활동이 지연되면서 그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거나 다시 되돌아가곤 합니다. 

생산자들도 케어가 부족해지면 점점 소수의 부담이 증가되며 협동의 효과와 즐거움이 줄어들고 할 수 있는 사업 기회도 축소됩니다. 줄어든 사업은 공유자원을 모으는데도 부정적 영향으로 이어지므로 또 하나의 악순환 흐름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앞에서 그렸던 선순환 사이클은 기대와 달리 여러 악순환 사이클로 대체된 흐름이 됩니다. 이런 악순환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정확한 문제 인식을 모든 관계자들과 공유하고, 악순환을 강화하는 요소들에 빠르게 대처해 나가며, 선순환으로 전환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레버리지'들에 집중해야 합니다. 한번 생긴 악순환은 소수의 사람에게 특정 행동을 주문하는 것만으로는 전환하기 어렵습니다. 모두가 함께 우리 공동체IT 조직을 사고하고, 우리 조직의 사회적 사명을 사고해 바깥을 포함한 흐름까지 사고하며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저 혼자의 생각입니다. 다른 분들은 흐름에 동의하지 않거나 다른 부분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2025년 정기총회의 워크숍을 시작으로 여러 모임에서 함께 생각들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2025년 정기총회를 순환의 방향을 다시 바라던대로 돌려 놓을 수 있는 첫걸음이 되도록 많은 분들의 참여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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