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노동> 인터뷰 : IT로 꿈꾸고 활동하다

인동준(지각생)
2021-07-07
조회수 449

인터뷰 기사보기 : http://www.workingvoice.net/xe/index.php?mid=inter_member&document_srl=312851#0

공동체IT의 소비자조합원이기도 한 비정규노동센터에서 격월로 발행하는 <비정규노동> 2021년 7,8월호에 제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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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준 회원, 공동체IT사회적협동조합 상임이사

 

 

인동준 회원을 만나기 위해 공동체IT사회적협동조합(이하 IT협동조합) 사무실이 있는 영등포구사회적경제지원센터로 갔다. 우리 센터 사무실에서 도보로 5분 거리였다. 이렇게 가까운데 그간 한 번도 찾아간 적이 없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와는 몇 번 마주친 기억이 있다. 그가 컴퓨터 수리를 위해 사무실에 왔을 때 서너 번 봤고, 점심시간 때 식당에서 우연히 한 번 만났다. 

IT협동조합에 도착하니 컴퓨터 앞에 앉은 그가 맞이해주었다. 사무실에는 그 혼자뿐이었다. 짐도 거의 없어 휑했다. 불광역에 사무실을 하나 더 구해 그를 제외한 나머지 상근 직원은 이사를 마친 상태였다. 인터뷰가 끝나갈 때쯤 그는 오래간만에 자기 이야기를 오랫동안 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나 역시 처음으로 IT 활동가를 인터뷰해봐 흥미로웠다. 

 

‘지각생’입니다

 

그의 활동명은 ‘지각생’이다. 예전부터 익히 들었으나, 사용 계기는 잘 몰랐다. 지각을 자주 하나, 라고 막연하게 생각해본 게 다였다. 이 기회에 물어봤다. 

2004~2005년쯤 그는 진보넷에서 운영하던 ‘진보블로그’라는 플랫폼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블로그 별명을 자주 바꾸다가 자기만의 정체성이 잘 드러날 별명을 짓기로 했다. 진보블로그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녹아난 자료가 많았다. 그는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기술 자체와 그것을 이용한 사회 변화에는 관심이 많았으나,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고 현재 어떤 문제가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바꾸어 나가야 할지는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공부를 늦게 시작하면서 반성한다는 의미로 ‘지각생’이라고 별명을 지었다. 사람들은 재밌어했다. 저마다 의미를 유추해 그를 불렀다. 그 별명을 쓰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그는 지각생으로 불리게 되었다. 

 

IT와의 만남

 

그는 어릴 적에 소위 문과 체질이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된 뒤로 수학 성적이 잘 나왔다. 이과로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에서는 기계전자공학을 전공했다. 딱히 원해서 간 건 아니었다. 그냥 성적에 맞추어 갔다. 학생 운동을 하려고 했으나 선배들이 그를 써주지 않았다.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일단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독서를 했다. 인문, 사회, 과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읽었다. 

소프트웨어 개발 관련 책을 보던 중 ‘오픈소스’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그는 거기서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엿봤다. 모두가 IT를 활용하고 소프트웨어를 쓸 수 있다는 말은 모두가 자신의 역량을 높일 수 있다는 말과 진배없었다. 그는 약자들이 IT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사회 운동을 해보기로 했다. 그때부터 컴퓨터를 독학으로 배웠다.

 

일단 시작한 사회 운동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는 도저히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평화 집회에 나갔다. 공부하고 생각하던 바들을 행동에 녹여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운동연합에 찾아가 봉사 활동을 자원했다. 단체 관계자가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가 컴퓨터 공부를 했다는 사실을 듣고 크게 반겼다. 그를 어느 사무실로 데려갔다. 50명가량 되는 환경운동가들이 활동하는 공간이었다. 그는 일주일에 하루씩 컴퓨터를 수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잠깐의 봉사만으로는 활동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다. 노동네트워크라는 곳에 지원해 합격했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민주노동당 등이 함께 만든 단체였다. 그는 서버 관리, 노조 홈페이지 제작을 맡았다. 방송 관련 일도 겸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노조가 인터넷 방송을 빈번히 할 때였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다가 직접 단체를 만들려고 사람을 모았다. 2013년 6월, 우여곡절 끝에 비영리IT지원센터를 만들었다. 그러나 구성원끼리 관심사가 달랐다. 그는 사람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싶었다. 소비자·공급자 단체에 끌렸다. 반면 함께하는 이들은 중간지원 조직에 더 관심이 많았다. 끝내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그가 비영리IT지원센터를 나왔다.

 

사람 중심의 IT단체

 

어느 아이디어 대회에서 시니어 두 명이 IT소비자협동조합을 만들고 싶다는 구상을 내놨고 좋은 점수를 얻었다. 그들과 그가 연결되었다. 여기에 비영리IT지원센터에서 현장 자원 활동을 하던 활동가가 합류했다. 그렇게 네 명이 주축이 되어 IT협동조합을 만들었다. 2016년 5월, 발기인 대회를 했고, 그해 11월 1일에 창립총회를 열었다.      

IT협동조합은 철저하게 현장 중심 조직이다. 현장에서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서비스 제공자가 꾸준히 활동할 수 있도록 측면에서 지원한다. 상근 직원은 세 명이다. 여기에 더해 평소 자기 일을 하다가 짬짬이 활동하는 생산자 조합원 35명이 있다. 

직원 세 명의 역할은 다음과 같이 나뉜다. 한 명은 컴퓨터 정비를 전담한다. 그것만으로도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다른 시니어 직원은 처음엑셀회계2라는 프로그램을 관리한다. 소규모 단체가 사용할 수 있는 기초적인 회계 툴이다. 덧붙여 IT협동조합의 회계도 맡는다. 마지막 남은 한 명인 그는 상담과 교육, 행정, 조직 관리를 도맡아 하고 컴퓨터 정비를 지원한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다 보니 힘에 부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서비스를 받는 분들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 역시 불만족스러운 경우가 왕왕 있었다. 여유가 생긴다면 여러 단체를 만나면서 초기의 IT 이상을 실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

 

그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역량을 가지고 서로를 존중하며 협력할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꾸고 있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IT로 정보를 수집·가공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게 중요하다. 정보가 있어야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끌고 나갈 수 있다. 

현재 정보를 주로 처리하는 곳은 정부나 대기업 같은 큰 조직이다. 시민사회는 기존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아날로그 콘텐츠를 IT를 이용해 전파하는 데 급급하다. 정보를 활용해 어떻게 삶을 개선 시켜 나갈지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이 보이지 않는다. 정보 중심의 사고가 부족한 것이다. 

그는 모든 단체 활동가가 기본적인 IT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을 체계화해 공동체IT학교를 설립하고 싶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공동체IT연구소를 만들어 시민사회가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고, 결국에는 시민사회가 주도적으로 기술을 활용하는 단계로 나아가길 바랐다.

 

IT로 낙관하다

 

그는 IT를 바탕으로 한 사회 변화에 낙관적이었다. 좋은 기술이 부족한 건 아니다. 단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IT는 여러 사람에 의해 실험되면서 삶에 적용되어야 민주적으로 발전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보와 자본을 가진 정부나 대기업이 바라는 방향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그가 노동네트워크에서 활동할 당시, 해외에서는 한국 노동단체들의 IT 사용 역량이 대단해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대부분 상실한 상황이다. 지금부터라도 IT의 가치와 가능성을 인정하고, 스스로 정보 윤리를 세워야 한다. IT 공간에서 반대 의견을 외면하지 말고 민주적으로 토론하고 설득해나가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게 중요하다. 불편하다고 언로를 차단하면 안 된다. 또한, 서로 나누고 돕는 정보공동체 문화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기술 변화를 받아들이고 역량을 발전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곳은 노동네트워크다. 그는 여전히 노동에 관심과 애정이 많았다. 건강한 IT공동체를 실현하는 활동을 가장 먼저 노동계에서 해보고 싶다고 소망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정리_배병길 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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