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포용의 성공은 관점 변화에 달려 있다.

인동준(지각생)
2020-06-02
조회수 1731

디지털 정보격차(Digital Divide)가 현대인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국에서 정보격차의 문제는 한층 심각성이 커졌다. 원격 학습의 도입이 늘어나며 빈부에 따른 정보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져 아동과 청소년의 생애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19 확진자 중 상대적으로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 노인은 정보격차로 어려움을 겪는 주된 계층이다. 2019년에는 키오스크 사용의 어려움으로 불편과 소외 문제가 대두되었다면, 2020년에는 방역과 생계지원 정보와 물품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음으로써 생존에까지 관련된 문제로 심각성이 더해졌다. 정보격차가 낳는 소외와 배제를 극복하는 ‘디지털 포용’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한국의 디지털 정보격차 해소 노력은 민간의 IT기기 기부와 교육 자원활동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으나 정보격차해소에관한법률, 국가정보화진흥법에 의해 주로 정부 차원에서 오랜 기간 진행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매년 발표하는 디지털정보격차실태조사를 보면 “접근”, “역량”, “활용” 측면에서 꾸준히 정보격차가 개선되는 것으로 지표상으로 나타난다. 특히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 보유 및 인터넷 사용 가능 여부를 측정하는 지표는 2019년에 91.7에 달해 거의 ‘해소’되어 가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다. 현 정부의 사람 중심 철학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 포용’ 정책도 2019년부터 본격적인 조직과 연구 활동이 시작되며 한국의 정보격차 문제는 만족스러운 속도는 아니어도 계속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2019 디지털정보격차실태조사보고서(그림: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9년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 결과 발췌)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정보격차가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된 2020년 현재의 사회 전반적인 정보격차 해소 노력은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디지털정보격차 지표가 (현실을 얼마나 반영하는지는 차치하고) 개선되는 추세 때문인지, 2019년 하반기에 시작된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해 산업 육성에 관심과 역량이 집중된 탓인지, 정보격차 해소와 관련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0년 예산은 모두 축소되었다. 국내 ‘정보격차해소 지원’ 사업은 2019년 대비 10%(10억여원) 감소된 102억원 수준이며, 간접적으로 정보격차 해소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회문제해결’ 관련 사업들도 큰 폭으로 감소되었다. 관련 사업들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합해서 0.1%도 채 되지 않는다. 코로나 19로 인해 취약계층의 생계 지원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추경이 진행되고 있고 디지털 격차가 취약계층의 삶에 더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보도와 분석이 여러 차례 나오고 있음에도 디지털 취약 계층을 위한 사업에 예산이 책정된다는 소식은 잘 들리지 않는다. 정부 외에도 민간의 IT기기 기부와 교육 지원 활동이 활성화되면 좋겠지만 코로나19가 가져올 전 사회적인, 비가역적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디지털 취약계층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는 듯하다.

일단 화두가 되면 대부분이 인정하는 디지털 격차 문제의 중요성에 비해, ‘디지털 포용’ 이 한국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얻고 구체적인 노력을 함께 진행할 때가 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다. 현실에서 정보격차 해소 활동을 수행하며 체감하는 것과 실태조사의 지표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4차산업혁명이 대두되기 전에도 그랬고, 코로나19로 인해 결정적으로 디지털 전환에 반드시 적응해야 하는 상황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반면, 정보격차 해소의 노력은 그런 외부 환경의 변화와 다소 동떨어진 흐름과 속도로 계속되는 것처럼 보인다. 일부 ‘접근’의 문제가 수치상으로 개선된 것을 전체적인 정보격차 문제가 해결 국면으로 가는 것으로 여기고 지원을 줄이는 경우도 공공과 민간 부문을 아울러 상당하다. 혁신을 얘기하는 일부 전문가의 선동적인 메시지는 정보격차가 현실에서 만드는 한계들에서 사람들의 눈을 계속 돌리고 있다. 정보격차 해소 노력을 취약계층에 대한 자선 행위처럼 생각하고 현재 기술로 인한 문제는 기술이 더 진보함으로써 해결될 것이라는 기술결정론도 팽배하다.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좀처럼 합당한 관심을 얻지 못하는 ‘디지털 포용’이 한국에서 성공하려면 기존과는 다른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사용자 주도형 혁신 동력으로

디지털 격차를 좁히지 못하면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는 있으나, 디지털 격차가 성공적으로 줄어들어 일정 수준을 유지할 때,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얘기되지 않는다. 허즈버그의 동기-위생이론에 빗대어 보면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것은 기술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을 감소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만 그 자체로 어떤 진보가 이뤄지는 것은 아닌 것, 즉 ‘위생요인’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디지털 기술 발전과 디지털 격차 해소 노력은 별개로 구분되어 이뤄져야 하고, 기술 변화로 인해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는 디지털 격차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지원을 통해 사회의 갈등을 봉합하는 정도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이런 인식에서는 디지털 격차 해소 활동은 꼭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을 만족하면 되는 것이며, 기술 변화로 생긴 결과에 맞춰 사후적으로 뒤쳐진 사람들을 돕는 행위로 국한된다.

현대는 ‘사용자 주도형 혁신’이라는 말이 생소하지 않은 시대이다. 적어도 특정한 부문에서는 성공적인 강력한 모델로 이미 자리매김하고 있다. IT에서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Open source Software)’가 대표적인 예이다. 오픈소스의 성공 요인은 누가 뭐래도 사용자와 개발자가 엄격히 구분되지 않고 빠른 피드백을 주고받는 공동체(커뮤니티)에 있다. 핵심 개발자와 비슷한 수준의 코드로 기여하지는 않아도 다양한 사용자(다른 개발자를 포함한다)가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자가 발견 못한 문제점과 개선점을 제시하고, 사용 방법을 문서화하고 주변 사람에게 알려주는 활동을 하며, 단지 관심 갖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개발자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IT의 초기 역사에서는 사실상 개발자와 사용자가 거의 동일한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었고, 이상적인 협업으로 여러 혁신을 이뤄냈다. IT의 상업화가 진행되며 사용자와 개발자가 분리되고 서로의 격차가 더 벌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비전문 사용자의 피드백은 개발자에게 많은 동력을 제공한다. 한국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진흥 정책은 공급자(기업, 개발자) 중심으로 추진되어 왔는데 사용자의 활동을 장려하는 것으로도 소프트웨어 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기술수용주기 이론에 의하면 기술첨단제품 시장은 크게 초기 시장, 주류 시장, 말기 시장의 3개 시장이 있고, 혁신 수용자, 선각수용자, 전기 다수, 후기 다수, 지각 수용자의 총 5가지 유형의 고객으로 구성된다. 이 중에 초기 시장을 이루는 혁신자와 선각수용자에서 전기 다수를 이루는 실용주의자까지 기술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관건으로, 이 단계를 넘어가면 대중적으로 성공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반면 신제품이 초기에 혁신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어필하지만 대중화 단계에 실패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이 경우를 ‘캐즘(chasm)’이라고 한다. 캐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얼리-어답터만이 아닌 실용주의자(전기다수사용자)를 포함한 다양한 사용자의 빠른 피드백을 얻는 것이 효과적인 한 방법이다.



지금의 정보격차 해소 노력은 가장 뒤쳐진 회의론자(지각사용자)를 지원하는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술의 발전이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좋은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하면 뒤쳐진 사람을 위한 일방적인 지원 활동만으로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이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발전하지 않는 경우 정보격차는 무조건 뒤처진 사람이 따라가야 할 것으로 얘기하기는 힘들다. 만일 각 단계별 정보격차를 줄이는 맞춤 노력을 통해 전체적인 사용자가 조금씩 더 앞당겨 새로운 기술을 일찍 접하고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새로운 유망 기술이 대중화에 실패해 가능성을 피워보지 못하고 사장되는 일을 줄일 수 있어 디지털 사회 혁신을 활발하게 할 수 있고, 보다 많은 사람의 필요와 활용 역량에 맞는 기술로 발전하여 정보격차를 적게 만드는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도 있다. 기술의 변화로 인해 발생한 결과적인 격차에 대응하는 것만이 아니라 예상되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위한 준비활동으로서 정보격차 감소 활동이 이뤄질 수 있다면, 새로운 기술이 낳을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한으로 예방하며 보다 포용적인 혁신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정보격차 해소 활동은 기술 발전(혁신)사업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긴밀히 연결된 것이 된다. 이런 모든 단계의 사람을 위한 정보격차 감소 활동은 지금보다 많은 동력을 필요로 하므로(지각수용자를 위한 활동은 어떤 경우에도 멈출 수 없고 지금도 아직 부족하다) 당장 추진되기엔 어려울 수 있지만 적어도 정보격차 해소 노력이 사회적으로 갖는 위상을 재정립하고 ‘지속가능한 포용적 혁신’이라는 비전으로 나아가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양적 해소에서 질적 해소로

2019년에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공공 부문의 논의 자리에 참석했을 때 “정보 기기는 이제 충분히 보급되었으니 그보다는 다른 쪽으로 생각하자”는 얘기가 초반에 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 초반에 나와서 이후 논의를 제약할 가능성이 컸고, 정보격차 활동을 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섭외된 자리이므로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반박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공공기관에서 취약계층을 위한 기초 IT교육이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낮 시간에 생업을 하느라 수업을 듣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8년간 공공시설을 빌려 야간 컴퓨터교실을 해왔다. 컴퓨터와 모니터는 꽤 충분한 숫자가 있었지만 상당수의 모니터가 전원 버튼이 고장 나서 켤 수 없었고 컴퓨터는 사양이 낮아 속도가 느렸으며 설치된 소프트웨어 버전이 낮아서 최신버전을 접해 본 수강생에게 서로 비교해서 설명하느라 어려움이 있었다. 장비의 교체와 소프트웨어의 업데이트를 수차례 요청했으며 강사단에 전문가가 많으므로 구청에서 빠른 조치가 어려우면 직접 손 볼 수 있게 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여러 이유로 거부당하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하나씩 개선되었는데 그나마다 현재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수준에 비하면 몇 년씩 뒤처진 상태였다. 이와 같이 이용자가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의 숫자는 어느 정도 있어도 실질적으로 적절한 수준에는 미달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매년 실시하여 각종 기관에서 기준으로 활용하는 실태조사의 ‘접근’항목도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를 보유했는지 여부만 물을 뿐 장비의 사양이 요즘 기준에 비춰 볼 때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소프트웨어는 적절히 업데이트 되어 있는지, 고장 나서 못 쓰는 시간이 많진 않은지 등은 파악하기 어렵다.


민간의 기부도 마찬가지이다. 컴퓨터가 없던 사람에게는 느리더라도 있는 것이 낫다고 할 수 있기에 중고 컴퓨터를 재생하여 기부하는 경우가 많았고 정보 취약계층의 접근성 향상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IT기기도 사용하면서 여러 문제가 생기고 노후화되므로 유지보수가 꼭 필요한데 컴퓨터를 기증한 후 3~4년간 유지보수까지 지원하는 기부 프로그램은 사실상 거의 없다. 또한 중고 컴퓨터의 경우 교체할 부품을 구하기 어렵거나 오히려 비싸게 구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처음 기증 받은 순간에는 도움이 되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용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전원조차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아니라면 컴퓨터의 보유 여부를 묻는 질문에 ‘보유하고 있다’고 대답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처럼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실태조사의 ‘접근’ 부문의 지표는 실제 질적인 부분을 반영하고 있지 않는데, ‘역량’(60.2)과 ‘활용’(68.8)부문은 아직 지표상으로도 충분치 않으므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으나 접근 부문은 앞으로도 계속 지원이 감소될 가능성이 있다. 양적 지표를 질적 지표로 보완하여 디지털 취약계층이 일정한 주기로 IT기기를 지원 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과거와 달리 웹 활용에도 컴퓨터의 자원을 많이 사용하는 등 개인의 기기에 요구하는(기대하는) 장비의 성능 기준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IT기기의 성능과 안정성은 학습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역량’ 부문과 ‘활용’ 부문에도 관련될 수 있다. 덧붙여 디지털 보안의 문제가 점점 큰 위협으로 되고 있는 요즘에는 자료를 백업하는 추가 장치를 필수 요소로 보고 조사 항목에 넣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개인에서 공동체로

지금까지의 정보격차 실태조사는 개인의 정보화 수준을 측정한다. 개인의 정보화 수준이 향상되면 IT를 이용해 다양한 온라인과 오프라인 커뮤니티를 조직하고 참여하는 활동이 증대된다. 실제로 개인이 IT를 활용하는 목적 중에 공동체에 참여하는데서 오는 기쁨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온라인 단톡방이나 선호하는 주제와 관련된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글을 읽는 것부터 오프라인의 활동으로 이어져 동호회나 마을 기업, 비영리 단체 등을 만드는 것까지 폭넓게 IT가 관여한다. 국가 전체를 기준으로 개인이 갖는 기술 수준에 따른 개인 간의 정보격차 외에도 특정 공동체에서의 개인 간의 정보격차, 공동체와 공동체 간의 격차도 존재한다. 개인의 삶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구성되므로 개인의 IT활용과 함께 공동체의 IT활용 또한 측정되고 격차가 관리되는 것이 보편적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취약계층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시민단체와 사회적경제조직의 IT활용수준은 현재 거의 측정되고 있지 않다. 가벼운 목적으로 구성한 모임부터 개인의 권리 보호와 사회변화를 위해 조직한 단체 등 다양한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구성되는데, 거의 모든 종류의 조직이 IT와 회계 분야 등에 전문 역량을 필요로 한다. 영리기업과 달리 비영리조직은 충분한 자원을 갖고 시작하는 경우가 드물며 필요한 역량을 자체적으로 감당해야 하므로 만성적인 IT역량 부족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민간에서는 다음세대재단이 비영리조직의 IT활용실태조사를 수행해 오다 점차 조사 범위와 빈도가 감소했으며 정부차원의 비영리조직 IT활용실태 조사는 시행되고 있지 않다. 다음세대재단의 2015년 비영리 디지털 미디어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비영리조직의 구성원들은 디지털 미디어의 활용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나,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내부 교육 경험 15%, 외부 교육 경험 22.8%). 구성원이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데서 느끼는 만족감과 효능감이 떨어지면 조직적으로 기술 사용에 대해 소극적이 되며, 구성원들의 기술 역량 강화 노력에 대한 시간과 비용 투자를 줄여 더욱 기술의 효과를 입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취약계층 아동/청소년을 지원하는 시설의 디지털 기술 활용수준은 돌보는 아동/청소년의 디지털 기술 활용 역량에도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19로 오프라인 모임이 제한되어 디지털 원격회의를 시도하는 조직의 속한 구성원은 자연스럽게 그 조직의 경험을 다른 그룹에서도 공유하고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취약계층의 IT교육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의 교류 협력을 병행할 때 효과적으로 이뤄진다.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개인에 대한 지원도 꾸준히 이뤄지고 확대되어야 하며,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조직, 취약계층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공동체도 정보격차 실태 파악과 함께 IT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게끔 지원이 필요하다.


기술에서 사람으로

어느 단체에 기술지원차 방문했더니 몇 해 전 기증받은 컴퓨터가 포장된 상태로 그냥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취약계층 여성에게 문해교육을 하는 단체로 한글 교육 외에도 컴퓨터교육도 강사가 있으면 실시하고자 하는 곳이다. 민간에서 기증한 컴퓨터인데 상태를 확인해 보니 몇 해전 기준으로도 사양이 좀 부족한 것이었다. 좁은 교육장에 설치할만한 것인지도 모르고 직접 설치할 줄도 몰라서 안 그래도 부족한 공간 한 켠을 큰 컴퓨터들이 오랜 기간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좋은 마음으로 보낸 것이고 어느 곳에서는 그런 기부를 통해 도움 받은 곳이 있을 것이다. 좋은 컴퓨터 기증 프로세스는 보내려는 곳에서 사람이 먼저 방문해 상담을 하고 컴퓨터를 설치할 만한 곳을 확인한 후 컴퓨터를 보내 직접 설치까지 해주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유지보수까지 해준다면 완벽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거기까지 기대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한 번은 사람이 수요처를 직접 만나 상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접근’ 부분에 정보격차가 많이 줄어들어 만족감과 홍보 효과가 떨어진다고 여겨서인지 점차 장비 기부가 예전만큼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규모 있는 기업에서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컴퓨터와 노트북의 성능은 평균적인 비영리조직과 취약계층 개인이 필요로 하는 수준을 크게 상회한다. 앞으로도 민간의 IT장비 기부가 많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다만 기증 후에 실제 활용이 잘 이뤄지도록 사후 관리까지 섬세하게 해주는 사례는 많이 겪어보지 못했다. IT의 모든 영역에 걸쳐 유지보수는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보편적인 관심은 기기의 도입, 서비스의 오픈 등 초기에 집중된다. 새로운 기술이 여는 마법 같은 느낌에 감탄할 뿐 그것을 만들고 유지하는 사람의 영역은 조명을 받지 못한다. 정보격차가 생기는 원인 중에 하나이며 정보격차를 줄이는데 꼭 필요한 부분은 IT에서 사람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오픈소스(Open Source)를 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여러 문화적 특성을 얘기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큰 것은 한국의 IT노동자가 생업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2018년 IT산업노동조합이 이철희 전 국회의원실과 함께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근로기준법상 법정 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을 준수하는 비율은 12.4%에 불과하다. 과도한 노동과 스트레스로 자살 시도율은 일반인의 28배에 달한다. IT산업노동조합이 2010년에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에는 한국의 IT노동자가 OECD 평균 근로시간의 두 배에 가까운 2906시간을 1년에 일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악명 높은 IT노동자의 근무 환경은 2017년부터 자살과 과로사가 사회적 충격을 주며 조금씩 개선되는 듯 보이지만 게임 업계 등은 여전히 암암리에 강도 높은 초과 근무가 이어지고 있다. IT노동자의 권리 보장이 부족한 상황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자기계발을 하도록 강요받는 여건이다 보니 퇴근 후에 오픈 소스에 기여하는 활동은 현재 생업과 직결된 부분이 아니면 거의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만일 한국의 IT노동자들이 법정근로시간만 일해도 충분하며 개인의 삶을 돌보고 공동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면 어떨까? 오픈소스 진흥을 위해 현재 이뤄지는 다른 어떤 노력보다도 효과가 높을 것이다. 개인과 지역 의제에 참여하며 주민과 취약계층이 필요로 하는 마이크로 서비스들이 개발되어 공동체의 만족감과 행복감이 크게 상승할 것이다. 내가 필요로 하는 기능만 들어 있는게 아닌 거대한 범용 프로그램 사용법을 배우느라 고생하고, 사용법을 익혀도 정작 현실의 필요를 다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러 지역과 단위에서 꼭 필요한 기능만 들어간 쉬운 앱들이 나와 빠르게 구체적 현실을 바꿔가는 사회혁신으로 전환될 수 있다. 또한 그런 도구들은 익히기도 쉽고 사용 즉시 효능을 느낄 수 있으므로 새로운 도구가 만드는 정보격차가 자체로 크지 않고, 쉽게 좁힐 수도 있을 것이다.


정보격차가 커지고 좁히기 어려운 원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큰 원인은 디지털 기술의주체가 전문가인 공급자와 비전문가인 소비자로 양분되어 서로 교류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구매 행위로만 만날 수 있는 한은 서로의 이해가 상충되어 의도적으로 격차가 더 만들어진다. 정보격차를 해소하는 모든 노력에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은 개발자와 사용자가 다양한 경로로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하고, 정보격차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그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IT노동자가 아니어도 한국 사람들은 너무 많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생업은 별도로 하고 과외 활동으로 정보격차 활동을 할 수 밖에 없다면 참여의 폭과 깊이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술의 소비자로서만이 아니라 혁신의 주체로서 사용자를 존중하고, 공급자에게 지원하는 만큼 사용자들의 공동체 활동을 격려하며, IT기술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의 여건을 만드는 활동이 함께 이뤄질 때 정보격차가 지표상으로 만이 아닌 실질적으로 감소하며 IT가 그리는 아름다운 기대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디지털 복지를 확대하자

신념을 가진 미니멀리스트가 아닌 이상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지 않고 현대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유 있는 사람의 소비 행위로서만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수준 이상으로 기술 발전의 혜택을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디지털 정보격차 해소 노력이 사회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의무방어전을 치르는 느낌으로 행해졌다면, 많은 사람이 정말로 디지털 기술 변화에 참여해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술 혁신이 이뤄질 수 있는 진짜 ‘포용’으로 나아가야 한다. ‘디지털 포용’은 소외와 배제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의미 있는 슬로건이지만 앞선 이(전문가, 공급자)가 주체로서 뒤쳐진 이를 조금 더 배려한다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디지털 기술 환경에 포위되어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입을 권리가 있고, 기술을 활용해 사회 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되어야 한다.

디지털 정보격차는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며,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도 다양한 경로로 이뤄져야 한다. 어느 한 정부부처와 관련기관의 노력만으로는 큰 효과를 이루기 어렵다. 담당부처에서 보다 높은 우선순위로 정보격차 해소 활동을 하는 것과 함께 범부처가 함께 협력하는 사업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지속가능하고 바람직한 디지털 사회혁신’의 선결조건이자 견인 동력으로서 ‘정보격차 관리’를 설정하고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며 각 계층의 사람들이 피드백을 주고 참여하는 그림을 만들자. IT분야의 신기술 개발과 관련된 모든 사업에 정보격차 영향성 평가를 의무화하고 역기능에 대한 대비와 극복 방안을 포함시키는 것을 제안한다. 지금까지 정부와 민간에서 수행해온 정보격차 해소 활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보다 깊이 있는 연구와 분석이 다양한 연구이뤄지길 바라며 민간의 자발적인 정보격차 활동이 확대되고 유지될 수 있도록 기술보다 사람 중심으로 정책 방향이 전환되기를 기대한다.

공동체IT사회적협동조합 인동준 / 2020.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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