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이너스 요금제 변화와 시민단체 홈페이지 제작 20년

캠페이너스 2.0 업그레이드가 15일 남았습니다. 요금제가 바뀌면서 단체들의 부담이 조금 늘어날 것 같아요. 기존에 쓰던 분들은 할인 쿠폰을 줘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하니 캠페이너스 도입을 염두에 두셨던 분들은 서두르시는게 좋을 것 같네요.
시민단체의 홈페이지를 저렴하게 제작하는 것은 20년이 넘게 이어온 이슈입니다. 초기에는 뜻있는 개발자 혹은 업체 대표, 관련 분야 교수 등의 결단과 희생으로 이뤄졌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희생은 짧은 감사와 긴 실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의 희생의 가치를 제대로 알 수가 없어서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면, 작고 가난한 시민단체가 홈페이지를 만들려고 할 때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비용은 아직도 100~300만원이 보통입니다. 해마다 나오는 전년도 개발자 평균임금으로 통상적인 방법으로 견적을 내어 보면 아무리 간단한 사이트도 1000만원에 가까운 수준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죠. 만일 어떤 뜻있는 분들이 "그래요 제가 평소에 당신들을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300만원에 해드릴게요"라고 하시고 제작을 진행합니다. 그러면 이 분들은 사실 700만원에 가까운 기부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요. 하지만 많은 시민단체가 그런 계산을 할 줄 모르시고,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이 항상 절박하고 여유가 없으니 홈페이지 제작이 끝나면 그 고마운 걸 잊어버리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시민단체 홈페이지를 만들어주시던 뜻있는 IT인들은 "10년전 맞춰준 컴퓨터 왜 지금 느리냐"고 원망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터넷 유머처럼 끝이 가늠이 안되는 책임을 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결국 더 이상 희생과 봉사를 안 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시게 됐습니다.
그래서 2000년대 후반부터는 "시민단체를 위한 좋은 홈페이지 제작도구"로서 오픈소스 솔루션들을 열심히 소개, 제작하고 사용법을 공유해 직접 만들 수 있는 사람을 늘리는 방향으로 비중이 좀 더 옮겨 갔습니다. 과거 드루팔(Drupal)이라는 좋은 CMS를 알았을 때 열심히 주변에 소개하고 다녔고 시민단체에 있는 얼마 안되는 IT활동가들이 고사하지 않도록 "정보통신활동가네트워크"를 만들어 열심히 정보공유를 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도구가 있다고 해도 "자, 이걸 이렇게 저렇게 하면 이런게 뚝딱 나와요. 대단하죠? (우와)" 이런 후에 디테일한 부분까지 제작에 들어가면 결국 기술자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완벽한 해결책이 되기는 힘들었습니다.
2010년경에는 "재능기부"가 사회의 주요 트렌드로 떠오르며 "IT자원봉사자네트워크"가 만들어지려는 움직임도 생겼습니다. 기대를 안고 출발하다 좌초하려는 걸 이름도 없는 제가 나서서 억지로 명맥을 유지해갔습니다. IT인 개인과 시민단체의 단순 연결로는 실패를 한 적이 많아서(분명히 첫 만남은 뜨거웠는데 얼마 안 있어 "왜 그런 분을 소개해주느냐"며 제가 욕먹은 적이 많습니다) 결국 시민단체 활동가와 IT인의 지속적인 교류의 장을 만들려면 "IT보급 단체"가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IT가 필요한 사회적약자들이 서로 돕고 나눌 수 있는 소비자협동조합, IT자원활동가네트워크의 완성버전인 IT자원활동가협회, 정부-민간-NGO를 연결할 수 있는 IT나눔NGO 이 세가지를 만들겠다고 했고 그 중에 먼저 만들어진 것이 "비영리IT지원센터"였습니다. 2016년에는 제가 지금 몸담고 있는 "공동체IT사회적협동조합"도 만들어졌죠. 하지만 워낙 기반 없이 시작하다 보니 처음 꿈꿨던 "사회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활동가와 공익활동에 관심 있는 IT인의 활발하고 왕성한 교류"는 이뤄지지 못하고 아주 천천히 조직을 안정시켜가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7~2019년에는 지역 중간지원기관의 도움으로 "홈페이지 공동제작"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홈페이지를 처음 만드는 단체의 요구사항은 사실상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이런 곳들을 모아 사전에 많은 부분을 합의하고 꼭 필요한 것만 담아 테마도 비슷하게 만들어 보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러면 시민단체들의 부담은 1/N이 되고, 거기에 중간지원기관의 작은 도움만 있으면 비용은 0에 가까워지죠. 제작자는 1개+a 의 제작비를 받아 제 살 깎아 먹지 않고 참여할 수 있는 이상적인 모델이었습니다. 뜻은 좋았는데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고 제작자 그룹의 준비가 덜 되어 있어서 아주 만족스런 성과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좀 더 안정적인 개발자 그룹이 있고, 홈페이지 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초기 소통 역할을 제가 좀 더 열심히 참여한다면 아직은 가능성이 있는 그림이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네트워크를 가진 단체들이고 전통적 홈페이지를 만들어야 한다면 시도해 볼만한 가치는 아직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제작 방식의 변화가 꼭 필요했습니다. 윅스(Wix)로 시작해 요즘 N사의 서비스를 많이 쓰고 계신 "홈페이지 DIY 플랫폼"이 흐름을 바꾸고 있습니다. 그 중 제가 작은 단체들에게 가장 많이 소개하고 있는 것은 아임웹(imweb.me)과의 제휴로, 공동체IT의 대표적 생산자조합원 업체인 "누구나데이터"가 운영하는 캠페이너스입니다. 이거 나오고 나서 제가 시민단체 홈페이지 제작은 오직 고통 뿐이었다가 너무 신나서 저한테 떨어지는 것도 없는데 마구 홍보하고 다녔고, 시민단체 컨설팅을 하게 되면 거의 항상 테크숩(Techsoup)을 통한 정품 소프트웨어 구입과 캠페이너스는 소개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로서 "작고 가난하지만 열심히 사회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중소규모의 시민단체의 홈페이지 제작" 이슈는 결착이 나는구나 생각해서 마음이 아주 가벼워졌었습니다.
그런데 캠페이너스 요금제 변화로 9월 이후로 제작하는 단체는 기본 비용이 올라가고, 가장 저렴한 요금제에서는 일부 기능에 제한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운영하시는 분들의 고충도 어느 정도 알아서 이해는 충분히 됩니다만 흔히 얘기하는 "가난한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의 선"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비용이 오르게 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네요. 3주간의 첫 장기 휴가를 다녀오고 난 뒤에야 알아서 질문이나 의견을 드릴 수도 없었고요. 저는 직접적 관련은 없는 사람이지만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사람으로서 걱정이 됩니다.
요즘 어떤 단체의 홈페이지에 휴고(Hugo)라는 아주 새로운 제작 방식을 도입하게 되어 저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캠페이너스로 99% 커버할 수 있겠다 싶었던 영역이 다시 일부 벗어나게 될 것이라 이 방법으로 홈페이지 제작하는 것을 다시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캠페이너스 도입을 생각하고 계시던 곳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바로 이용하시는 걸 추천드리겠습니다. 사회변화를 위해 애쓰지만 사각지대에 있는 모든 중소규모 시민단체와 공익활동에 기여하는 이름 없는 IT인들에게 감사와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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