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활동가와 공익IT인 모두에게 힘을

인동준(지각생)
2022-08-20
조회수 329

(제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옮겨 둡니다)

"왜 활동가들은 필요한 것을 처음부터 속 시원히 얘기하지 않지?" "자신의 IT환경을 개선하려는 직접적인 노력을 전혀 안하는 모습 답답해" 내 주변에 있는 IT인들은 대체로 훌륭한 공익활동가이지만, 솔직히 종종 시민사회의 활동가들을 비하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을 때가 많다. 예전에는 화를 내지 않고 그들이 그런 말을 하는 배경을 듣고 이해한 후, 그 사람도 안타까운 마음 때문에 그런 거라면 공감하고, 편견과 몰이해 때문에 그런 거라면 활동가들을 부드럽게 변호하며 생각을 달리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에 누군가가 내 앞에서 활동가들의 태도와 행동을 비난하는 듯한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 잘 해오던 이해-공감-설득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대화를 하지 못하고 "나랑 안 지가 얼마인데 그런 말을 하죠? 활동가들의 걱정과 두려움 혹은 우리에 대한 미안함 등 때문에 때로 답답하게 하는거 잘 알잖아요" 이렇게 쏘아 붙인 적이 있다. 물론 담소 자리가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업무 협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이쪽 활동에 대한 내 권위가 어느 정도 인정되는 그룹 안에서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꾸중하듯이 얘기한 점은 경각심을 가지고 반성할 일이다. 


2003년부터 환경단체의 자원활동을 하고 2004년부터 노동단체들에 기술지원하는 조직에서 일하며 열정적이고 순수하고 때로는 스마트한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IT기술의 측면에서는 '약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으로 경험했다. 그 이해가 바탕에 있었기에, 내 선의의 활동이 온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거나 일부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정에서의 노력들이 부정당하고 원망받는 상황들을 많이 겪으면서도, 나는 활동가들을 원망하지 않고 늘 "더 완벽하게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더 가지고 살았다. 심리 건강 측면에서 스스로를 지나치게 괴롭히며 살아온 면이 크다. 


젊었을 때 IT로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Power to the People! 모든 약자가 자신의 상황을 개선, 반전시킬 수 있는 힘을 갖는데 IT가 도움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파도처럼 끊임 없이 변하며 일시적 불균형은 늘 있겠지만 힘의 차이가 영원히 이어지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내 관심은 늘 '누가 약자인가', '약자는 왜 그런 선택을 하는가', '어떻게 약자에게 적합한 힘을 줄 수 있는가' 등이었다. 심지어 모두가 즐거워 보이는 자리에서도 약자를 발견하는 레이더는 지금도 돌아간다. 그리고 놀랍게도 언제 어디서든, 약자는 항상 존재하며 그것을 자의던 타의던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 다가가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것이 내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 조직 등에서 끊임 없이 하는 일이다. 


그런 삶을 살면서 내가 갖게 된 생각은 이렇다. '모든 사람은 어떤 면에서든 약한 부분을 갖고 있다'. 내가 컨디션이 좋아 긍정적 에너지가 어느 정도 차 있을 때는 그 생각을 잊지 않고 어떤 갈등이 발생하던 어느 한쪽 편을 섣불리 들기 보다는 양쪽의 약한 점이 부정적으로 나오고 있는 지점을 찾아 부드럽게 터치함으로써 진정시키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자'와 '약자'의 이분법적 구도로 상황을 규정하고 어느 한 쪽 포지션에 가담하곤 한다. 나 또한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그런 이분법적 프레임이 발동해 '약자에게 함부로 하는 것 처럼 보이는 강자'를 경계하고 적대할 때가 있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강자'로 보이고 폭력적으로 언행울 하던 사람도 사실은 내면의 약점 때문에 '공격적 방어 전략'으로 그렇게 임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시민사회 활동가와 공익IT활동가가 만나면 보통 '강자'의 포지션은  공익IT활동가가 가져가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상황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역량의 압도적 차이가 그렇게 만든다. 며칠 전 글에 쓴 것처럼 활동가들은 대체로 IT인이 하는 작업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고 막연히 제대로 된 보상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도움을 얻고자 바짝 엎드려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활동가를 만난 경험이 적은 IT인은 종종 시민사회의 현재 IT역량을 '그냥 관심을 안 가져서', '의지가 없어서, 공부를 안해서' 등 환경적 문제보다는 주체들 내면의 의지 문제로만 생각해서 나쁜 인상을 갖고 대하는 경우가 많다. 길게 보고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 나로서는 최대한 그 상황들을 잘 무마하며 양측의 이해를 돕고 독려하여 그 만남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정치적 노력을 기울인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내 컨디션이 좋을 때는 그게 잘 되는데, 내가 너무 힘들어서 부정적 에너지가 많을 때는 즉각적 반응을 하며 '강자로 보이는' IT인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속으로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10년부터 지금까지 IT인들과 더 가까이 자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이쪽 판에 가까이 와 있는 IT인도 "약하다"는 점이다. 때로는 IT인의 현재 상황과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고 '이거 당신은 쉽게 할 수 있는거잖아요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활동가가 '도덕적 우월로 여겨지는 포지션을 활용하는 강자'의 포지션으로 여겨질 때가 있어 그런 활동가들이 원망스러울 때도 또한 있다. 이렇게 활동가와 IT인 모두의 약점들을 늘 발견하며 안타까워하고 중간에서 조정하는데 노력을 기울이지만 정작 내 활동의 가치 또한 잘 알아주는 사람이 적어 힘들기도 하다.


요즘 다시 긍정적 에너지가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겠다고 기대되는 시간들이긴 하나 최근 몇년간 내 에너지는 많이 고갈되어 왔다. 그래서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한 걸음 나아가는 노력보다는 적당히 봉합하고 '일단 넘기고 보는' 식으로 많이 임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면에서 쉽게 이분법적 프레임을 적용해 강자와 약자,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도움이 되는 사람과 도움이 안 되는 사람 등 여러 기준으로 구분해 속편하게 생각하며 사람들을 대해오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한쪽으로 쏠리려는 내면의 중심을 잡고 그 사람의 처한 환경을 이해해야 하고 시간을 들여 대화를 통해 표현된 것과 표현되지 않은 것을 함께 알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어렵게 얘기하는 것 같은데 나도 나이가 들어가며 '약자'가 되어간다는 위기감, 내 힘듬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얼마 안된다는 데서 오는 원망, 17년의 노력이 생각한 것만큼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가 적다는 데서 오는 피로감과 조바심 등이 날 괴롭히고 있다. 그래서 나보다 약한 사람을 존중하고 역차별을 스스로 당할 지언정 균형을 잡으려고 해왔던 노력을 요새 게을리할 때가 많아진다. 오래 해왔기 때문에 사실 조금만 에너지를 쓰면 '지금 날 불쾌하게 하는 저 사람도 사실 자신의 약점이 만든 부정적 에너지가 표출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러 전반적 여건에서 나보다 '약자'라고 생각하면 말을 더 신중하게 가려 하던 내가 요즘 들어선 그러지 못할 때가 많다는 자기 고백이다. 


고백의 말이지만 함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공익 IT인 모두 약한 부분들이 있는데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서로의 힘이 되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 지금의 내 좋은 무드가 이어져서 전처럼 긍정적 에너지를 뿜어내 그런 풍토를 만드는데 아름답게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 모든 약자들이 타인을 공격하지 않고도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 거기에 IT가 잘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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